간호사를 사랑한 간호사,대한간호협회 간호사 힐링프로그램-희망과 치유의 소록도 여행(제주시 동부보건소 윤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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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보건간호사회
- 작성일 24-12-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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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조금은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한센병보다는 힐링, 치유, 여행이라는 단어의 매력에 빠져서 참가하게 된 힐링프로그램이었다.
섬 이름은 작은 사슴과 같다고 하여 소록도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섬 전체가 국립 소록도병원의 관할 구역이다.
소록도의 한센병 박물관에서 해설사분의 설명으로 시작되었는데, 수탄장, 나병과 나균, 자혜의원, 중앙공원, 소록도 이야기 등을 듣게 되었다.
인상적인 이야기 중의 하나는 탄식의 장소 수탄장, 소록도 수탄장은 한센병 환자와 그 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1916년부터 1981년까지 운영되었으며 당시 두 개의 울타리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한 울타리 안에는 한센병 환자가, 다른 울타리 안에는 그 가족들이 울타리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아이들은 부모를 향해 손을 뻗기도 한 슬픔과 아픔의 장소였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들은 단지 한센병이라는 이유로 일제 강점기부터 강제 노역과 유전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서 단종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슬픔을 기억하는지, 방문객들에게 한센병 환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지, 소록도 앞바다의 물결은 거세게 치고 있었다.
힐링프로그램의 주목적은 마리안느와 마가렛 기념관 방문과 ‘제4회 마리안느· 마가렛 봉사대상 시상식’ 참여였다,
마리안느, 마가렛 두 간호사의 숭고한 인류애와 봉사 정신을 계승하고 확산하기 위해 제정되었다고 한다.
기념관 사업을 관장하고 계신 김영준 신부님의 강의를 통해 두 간호사의 삶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두 분의 존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오스트리아 부인회는 1958년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교육, 양로, 고아, 의료사업에 무려 96억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위해, 그들 자신도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한센병 환자를 돌보기 위해 1960년대에 가난한 대한민국, 그중에서 더 가난하고 고립된 섬 소록도에서, 이곳에서 느꼈을 이질감과 외로움도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자국민들도 보다, 더 소록도를 아끼고 사랑했던 간호사!
한센병에 관한 연구와 인식 부족으로 인해서 의료진들은 환자를 직접적으로 진료를 하지 못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두 간호사는 맨손으로 소록도 환자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간호를 했다 고 한다.
소록도는 직원이 다니는 길과 환자가 다니는 길이 나누어지고 직원이 사는 마을은 환자는 당연히 출입이 제한되었으나 두 분은 빵을 굽고, 식사를 준비하여 환자들을 초대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피부가 까맣게 그을린 섬 주민 한 분이 당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에 초대되었으나 밥을 먹지 못했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하였다. 당시 환자분은 본인이 먹은 수저로 나중에 두 분이 드신다고 생각하니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를 서슴없이 초대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사랑, 구수하고 따뜻한 밥상을 앞에 두고 차마 수저를 입에 대지 못한 그분의 진심이,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무엇이, 가슴을 꽉 채우고 목구멍까지 차 올라왔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나라에서 넉넉한 월급은 커녕, 제대로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환자의 더러운 고름을 맨손으로 짜내며, 잠 한 번 푹 자보지 못한 채 40년을 일한 두 분!
20대 젊은 나이에 찾아와 70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소록도를 위해 살았으며, 늙고 병든 몸이 주민들에게 짐이 되는 것 아닐까 하여 조용히 섬을 떠나야 했던 두 분!
소록도에 처음 왔던 시절에는‘마리안느씨, 마가렛씨’로 시간이 흘러 어느 때부턴가 ‘큰 할매, 작은 할매’로 통하는 소록도의 오랜 벗이었다.
자국민도 못할 힘든 일을 외국인이 우리 한국을 위해 봉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분의 노후를 보장해 주지도 못해, 소록도에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던 그들을 객지보다 더 어색한 고향으로 돌려보낸 것. 이것이 우리의 가장 가슴 아픈 실수이며, 부끄러움이라는 김영준 신부님의 말씀에 동감한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라는 조동화 시인님의 시구절처럼 두 분은 항상 본인은 간호사로서 본분을 다한 것밖에 없다고 하셨다.
나의 간호사 시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두 분은 진심으로 소록도를, 간호사를 사랑한 진정한 간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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