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보건소 코로나19 상황에서 새벽을 여는 사람들 ( 전북 남원시보건소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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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보건간호사회
- 작성일 23-02-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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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의 시간은 마치 도둑맞은 것 같다. 가족도 멀리했고 웬만하면 오고 가는 것을 생략했고, 만나지 않았고 그래서 함께한 추억도 없다. 오로지 사무실과 집 만 왔다 갔다 한 시간이었다.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인 시간.. 그러나 지금도 보건소는 현재 진행형이다.
2019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될 때는 이렇게 몇 년의 시간이 걸릴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1년 12월 하순부터 ‘22년 4월까지 환자 발생의 최고 정점을 찍으면서 동료들은 예민해지고 있었다. 보건소를 떠나 이직하는 동료들이 생겼고, 휴직을 들어가는 직원들도 많아졌다. 어렵게 공시생의 시절을 겪고 들어왔지만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잦은 비상근무로 계속되는 고된 현장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크게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진행되었는데 한 축은 환자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감염경로를 조기에 차단하고 유증상자를 검사받게 하여 신속한 환자 대응을 하는 일과 또 다른 한 축은 인공면역을 획득하게 하는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일,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 이렇게 크게 두 개의 축에서 진행되었다.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정부 대응지침은 13판이 되도록 변경되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변화에 따라 대처해야 했고, 자주 바뀌는 지침으로 인해 민원사항이 폭주되는 상황에 시달려야 했다.
그 뜨거운 이상기온 속에서 긴 시간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있어서 화장실 가는 일이 여의치 않았고, 겨울 눈보라 속에서는 손이 곱고 볼펜이 얼어서 글씨가 써지지 않는 혹한기 상황..
출근하자마자 빗자루, 삽을 먼저 들고 선별진료소 앞 눈길을 쓸었던 일들..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시민들의 줄이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365일 연중무휴 선별진료소는 쉬지 않은 채 돌아갔고 그렇게 벌써 두 해의 겨울을 우리는 할 일을 하며 묵묵히 보냈다.
보건현장 보건소라는 최일선에서 우리 보건인들과 전담병원의 의료진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수고가 지금의 K방역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국민들 모두는 수고한다고 격려했지만, 정책을 이끄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처우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사실은 보건소 직원과 가족이 아니면 체감하는게 달랐다. 우리처럼 촉각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던 중 나는 지난해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위한 예방접종센터를 체육관에 설치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휑한 체육관에 또 하나의 보건소를 만들어 내는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 하는 일과 같았다. 예방접종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 장비를 갖추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 여러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내 인적 네트웍이 되기도 했다.
접종센터에서의 우리의 활약은 단시간 내에 전 시민의 90프로 정도 기본접종을 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렇게 열심히 접종해 내면 코로나가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야속하게도 코로나바이러스는 새로운 변이바이러스를 계속 만들어 내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는 그렇게 1년을 예방접종률 높이는 사업을 하다가 간호사가 아니였으면 눈을 질끔 감았을텐데 거룩한 간호사 면허증을 가진 나는 소명감 때문에 ‘22년 1월부터 환자를 대응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지금까지 몇 명의 직원들이 이 부서를 거쳐 나갔는지 모르겠다.
대응부서는 환자 발생이 많아지면서 격무부서, 기피부서가 되었고, 서로 오는 걸 꺼려했다. 직원들은 민원전화에 시달리고, 업무량이 증가되면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신과 진료를 받고, 항불안제를 먹어가면서 일을 하는 직원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죽을 것 같다는 직원들의 절규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죽음으로까지 치닫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매스컴을 통해 접하기도 했다.
윗 분들이 나름의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이 6개월 근무제도, 시간을 정해두고 6개월 근무하면 대응부서를 빠지게 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렇게 되면서 많은 직원들이 교체됐고, 이곳을 정거장처럼 거쳐갔다. 그럴 때마다 또 가르쳐서 인계하고 직원들을 떠나 보내고 나면 남아 있는 나는 솔직히 순례자의 길처럼 고독하고 외롭다.
그닥 부지런하지 않고 잠이 많은 나는 빨리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팀장으로서 책임감이 나를 눈뜨게 하고 사무실로 달려 나오게 한다. 확진 검사 결과가 새벽에 올라오니 먼저 와서 자료를 정리하는 일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사무실을 가장 먼저 들어서면 나보다 더 빨리 나와 있는 노동자가 있다.
노동이 신성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불만 없이 청소하시는 분들, 밤새 닫혀있던 창문을, 아침을 활짝 열어 사무실 환기를 해 놓으시는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인다.
모두가 잠들은 시각,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제각각 맡은 바 일을 하면서 누가 보든, 안 보든 세상은 시작되고 돌아간다. 누가 보지 않아도 맡은 바 소임을 해주는 사람들이 각처에 있기 때문에 이 사회는 안정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말없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주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를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은 나랑 같이 새벽을 여는 사람.. 청소하는 아저씨, 아주머니 그들 일성 싶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곧바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옆에 놓인 쓰레기통을 조용히 비워주시는 행동으로 “여러분들이 시민들을 위해서 고생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어요” 라고 행동으로 알아주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진다.
논어에 인부지불온(人不知不瑥)이면 불역군자호(不易君子呼)란 말이 있다. 난 이 말로 스스로 위로한다. 알아주지 않아서 힘 받지 못 할 때가 왜 없겠는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군자, 우리 간호직은 이 코로나 상황 어려운 시기를 이끌어 나갈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알아주는 이 없다 해도 우리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이 나라 간호직 공무원으로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 나이팅게일선서를 했던 것처럼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선서한다”고 했던 그 약속을 나 스스로 지켜 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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